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00 남북정상회담 (문단 편집) == 진행 ==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youtube(JQta-HulTIU)]}}} || || {{{#fff KTV - '''2000 벽을 넘어'''}}} || >'''반세기 동안 쌓인 한을 한꺼번에 풀 수는 없을 것입니다. 그러나 시작이 반입니다.''' >---- >[[김대중]] [[전직 대통령|전 대통령]], 2000년 6월 13일 평양 도착 직후. 2000년 4월 10일 당시 [[문화체육관광부장관|문화관광부장관]][* 아마 [[대한민국 정부]]의 [[대변인]] 역할을 맡아 당시 문화관광부의 장관이 발표를 한것으로 추측된다. 참고로 현재에도 대한민국 정부의 대변인은 [[문화체육관광부장관]]이다.] [[박지원]]이 남북정상회담의 예정을 발표했다. 원래 발표된 일정은 6월 12일부터 6월 14일까지였지만, 북한 측이 준비가 덜 되었다는 이유로 하루 연기를 통보하고 남측도 이걸 받아들이면서 6월 13일로 조정되었다. 추진위원장은 [[박재규(1944)|박재규]] 전 [[통일부장관]]이었으며, 외교부 장관, 국가정보원장, 국무조정실장, 청와대 경제수석·외교안보비서관 등이 위원에 포함됐다. 준비기획단엔 통일부 차관(단장)과 각 정부부처 차관급 및 청와대 경호처장·의전비서관 등이 참여했다. '''[[1948년]] [[한반도]]가 분단된 이후로, 두 당국의 대표가 처음으로 만난 회담이다.'''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은 [[남북한관계]]사의 이정표로 남을 [[6.15 남북공동선언]]을 발표했다. 한반도 평화 조성과 [[햇볕정책]]의 결실과도 같은 이 회담은,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 전반에 걸친 한국 민주화 운동과 함께 '''[[노벨평화상]]'''을 수상하는 것에 영향을 미쳤다. 정상 회담 이후 [[남북 이산가족 상봉]], [[금강산 관광]], [[북한]]의 [[대한민국|남한]] 주최 스포츠 경기 행사 참가 등 민간 교류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. 남북 당국 간 회담이 지속했으며, 북한은 일본, 미국과도 화해 분위기를 유지하며 [[국교]] 정상화 교섭에 나섰다. 김정일의 조기 [[서울특별시|서울]] 방문도 예견됐으나 국제 정세의 급변 및 대한민국 국민 정서에 의한 국내의 반감 등으로 실현되지 않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